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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 칼럼] 김구 해부

김두용 기자 | 기사입력 2019/10/23 [17:20]

[지만원 칼럼] 김구 해부

김두용 기자 | 입력 : 2019/10/23 [17:20]

김구 해부

 

 

백범일지1.jpg

 

 

▲ 지만원 박사     ©더뉴스코리아

백범일지에는 김구(본명 김창수)가 당시 조선국모를 살해한 일본군 중위 쓰치다 조스케를 살해한 영웅이라고 표현돼 있다. 그러나 이는 180도 왜곡된 거짓이다. 그는 18969월 고종이 인천으로 긴급 전화를 해서 교수형을 면했다고 허풍을 쳤지만 서울 인천 간 전화가 개통된 시점은 19023월이다. 중요한 행심들이 거짓인 것이다. 김구가 살해한 사람은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 주막에서 나그네 차림으로 통역하는 아이와 함께 밥을 먹던 상인 쓰치다 조스케. 21세의 김창수(김구)는 여관 종업원이 노인보다 젊은이에게 먼저 밥상을 주는 것에 분개해 대우받는 일본인을 살해했다. 돌과 몽둥이로 잔인하게 살해한 후 강에 던지고 일본인이 타고 온 배 안으로 들어가 엄청난 돈을 갈취했다. 주체하지 못 할 만큼의 많은 돈을 배 안에 보관한 것을 보면 쓰치다는 일본군 중위가 아니라 상인이었다. 실제로 일본국은 그가 상인이었다고 밝혔다. 이런 쓰치다를 일본군 중위라고 생각해서 죽였다는 백범일지는 그야말로 황당한 무협지 소설이다. 해주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김구는 인천감리서로 압송되어 이곳에서 1896831, 95, 910일 세 차례에 걸쳐 일본인이 배석하는 합동신문을 받았다. 1022일 법부는 국왕에게 김구에 대한 교수형 건의했지만 간신히 사형을 면했다. 이후 수감 생활을 하다가 1898319일 탈옥했다

 

20191023_120223.jpg 

 

그런데 김구는 계속 거짓말을 한다. 백범일지에는 만일 18969월 당시 서울과 인천 사이에 전화중공이 완성도지 않았다면 자기는 그 때 처형됐을 것이라는 글이 있다. 고종 왕실에서 인천으로 긴급 전화가 걸려와 사형집행을 멈추게 했다는 것이다. 이는 거짓말이다. 한국전자전기통신연구소가 내놓은 우리나라전기통신기술 발달사 연구’ 78쪽에는 최초 전화는 1896년 궁내부에 자석식 교환기가 설치되면서 시작됐고, 19023월 한성(서울)과 인천 간에 전화가 개설되고 한성전화소에서 전화업무를 시작함으로써 개통됐다. 그런데 김구는 18969월에 서울과 인천사이에 전화가 개통돼 있었기에 사형집행이 급제동됐다 며 허풍을 쳤다. 공훈전자사료관(http://e-gonghun.mpva.go.kr)으로 들어가 검색창에 토전양량(土田讓亮, 쓰치타 조스케)을 치면 78건이 검색되는데, 그 중에 독립운동사자료집토전양량의 격살건 취조문뷰어보기를 열면 치하포 사건의 주범 김창수(김구)와 여인숙 주인 이화보의 취조문이 나온다.

 

 백범일지는 춘원 이광수가 썼는데 이광수야말로 글재주 하나 가지고 곡학아세한 졸장부다. 아래에 오마이뉴스의 김구 분석이 있다. “박정희가 띄운 김구, 어떻게 진보의 아이콘 됐나그 요지는 아래와 같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30031

 

김구의 아들 김신은 5.16당시 공군 중장이었고, 5.16 혁명에 동참했고, 계속해 박정희 곁에서 출세했다. 1962년 공군참모총장직을 예편하고 주 타이완 대사로 8년 있었다. 그 후 교통부 장관을 거쳐 유신정우회 국회의원이 됐다. 전두환이 세운 독립기념관의 초대 이사장을 거쳐 백범김구기념관 관장 및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을 지냈다. 이러한 연유로 박정희는 이순신과 함께 김구를 민족의 영웅으로 선정했다. 남산에는 백범광장을 조성하고, 1962년에는 김구에게 건국공로훈장 중장(현 대한민국장, 건국훈장 1등급)을 수여했다. 훈장심사에는 이병도, 신석호가 참여했는데 민족문화연구소는 이 두 사람을 친일파로 규정했다.

 

좌익의 여왕벌 격인 민족문제연구소가 좌익의 영웅 김구를 영웅되게 띄워준 박정희와 김구에게 최고의 훈장을 주라고 심사해준 이병도와 신석호를 친일파로 매도한 것은 꼬여도 한참 꼬인 아이러니다 

 

김구의 특기는 살인이다. 그는 21살 때 죄 없는 일본인을 돌멩이와 몽둥이로 살해하고 금품을 훔쳤다. 56세이던 1932년에는 어린 이봉창과 윤병길에게 폭탄을 주어 살인을 교사했다. 19477월에는 여운형과 송진우가 암살됐고, 그 암살범이 김구일 것이라는 여론이 팽배했다. 여기에 5개월 후인 12월에 한국민주당 당수 장덕수까지 암살당하자 미군정은 미온적이던 태도를 바꿔 김구를 직접 재판정에 세웠다. 이 재판에서 김구는 용케도 무죄로 나왔지만 그가 이끌던 한독당은 치명상을 입었다. 조소앙은 정계를 은퇴했고 김구의 최측근인 김석황, 조상항, 신일준, 손정수, 김중목, 최중하, 박광옥, 배희범 등 8명에겐 교수형이, 조엽과 박정덕에겐 10년형이 언도됐다. 김구 옆에 있다가는 제 명에 못 간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박정희도 전두환도 역사를 몰라 김구 신화를 만들어주었고, 그 처사가 오늘날까지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좌익들로 하여금 김구 신화를 높이 받들며 똘똘 뭉치게 했고, 무방비 상태에 있는 대다수 국민으로 하여금 김구를 민족 최고의 영웅이라고 믿게 했다.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좌익이 설치한 붉은 무대 위로 올라가 춤을 추게 했고, 오늘날 모든 국민 위에  빨갱이들이 군림하도록 만들어 주었다. 역사공부는 이래서 중요한 것이다.

 

 


신문기사.jpg

 

 

 

신문기사1.jpg

 

해주거 김창수(金昌洙) 당년 21(공훈전자사료관)

 

초초(初招) 1896.8.31.

 

[] 그대가 행한 일은 이미 이화보(李化甫)가 명백하게 고한 바 있으니 사실대로 말하라.

 

[] 내가 금년 정월 24일 용강(龍崗)으로부터 안악(安岳)으로 가던 도중에 평양 사람 정일명(鄭一明)과 함경도 정평(定平) 사람 김장손(金長孫)과 김치형(金致亨)을 만나 같은 배를 타고 치하포(鴟河浦)에 와서 점주(店主) 이화보를 찾아가 저녁을 먹고 그곳에 투숙하였다. 이튿날 밝은 새벽에 조반을 마치고 길을 떠나려 하였는데, 점막(店幕)의 법도가 나그네에게 밥상을 줄 때 노소(老少)를 분별하여 그 차례를 마땅히 지켜야 하는데도 손님 중에 단발을 하고 칼을 찬 수상한 사람이 밥상을 먼저 요구하자 여점원이 그 사람에게 먼저 밥상을 주므로 마음으로 심히 분개하였다. 그래서 그 사람의 근본을 알아본즉 일본인이므로 불공대천지수(不共戴天之?)라고 생각이 되자 가슴의 피가 뛰었다. 그러한 때 그 일본인이 한눈을 팔고 있는 틈을 타서 발길로 차 거꾸러뜨리고 손으로 때려 죽여서 얼음이 언 강에 버렸다. 그러고 나서 동행한 세 사람은 약간의 현금을 가져다가 점주에게 8백금을 맡기고, 그외의 돈은 세 사람의 노자로 쓰기로 했다. 그리고 본인은 일본인의 환도(環刀)를 탈취하여, 당나귀 한 마리를 일흔 다섯냥으로 사서 단기(單騎)로 재령(載寧)으로 향했다가 동년 3월에 집으로 돌아왔다가 해주(海州) 순사에게 체포되어 여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건양(建陽) 원년 831

인천항 경무관 김순근(金順根)

죄인 김창수(金昌洙)

 

김창수 재초(再招) 1896.9.5.

 

[] 그대는 동당 몇 명과 이화보(李化甫)의 집에서 함께 유접(留接)하다가 일본 사람을 죽였는가?

[] 처음 평양 남문 밖에서 초면인 상민(商民) 세 사람을 만나 동행하여 이화보의 집에서 함께 지새다가 일본 사람을 죽일 때 그들 세 사람은 도망했다.

[] 그대는 동행 세 사람과 이화보(李化甫)의 집에 도착하여 그대가 한 말 가운데 동당 몇 백명이 곧 뒤따라 도착할 것이니 짚신(草鞋) 등의 물품을 미리 준비하라고 하였다는데 이는 동당이 있음을 뜻하지 않는가?

[] 당시는 각처에 도적들이 봉기하기로 그런 허세를 부림으로써 점주를 현혹케 하려던 것이다.

[] 일본인을 때려죽일 때에 쓴 흉기는 무엇이며, 동행 세 사람도 함께 협력하였는가?

[] 처음은 돌로 때리고, 다시 나무로 때리자 그가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 도망가기에 강변까지 쫓아 따라가서 몽둥이로 거듭 구타하여 죽인 뒤 시체를 끌어다가 얼음판에 버렸으며, 동행 세 사람은 이 일에 관계한 바가 없다.

 

 

 

 

 

 

              

 

 

 

        

 

 

 

 

 2019.10.23. 지만원

http://www.systemclub.co.kr

 

 

 

 

※외부 필자의 기고는 <더뉴스코리아>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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