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원 칼럼] 김일성과 조갑제

김두용 기자 | 기사입력 2020/05/09 [11:16]

[지만원 칼럼] 김일성과 조갑제

김두용 기자 | 입력 : 2020/05/09 [11:16]

5.18은 김일성 지령

 

 

▲ 지만원 박사     ©더뉴스코리아

1983109, 아웅산 만행이 자행되어 대한민국 각료 전체가 버마에서 일거에 희생되었다. 17명의 각료들이 그 자리에서 순직했고 1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미얀마 정부는 주범 2(강민철, 신기철 대위)을 체포하여 사형을 선고하고 북한과 국교를 단절한 후 다음해인 198410, 아웅산 사건은 북한의 소행이라고 UN에 보고한 바 있다. 미얀마 정부가 이 2명을 잡지 못했다면 우리는 지금까지도 누구로부터 당했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로 인해 미국은 북한을 테러 지원국으로 지정해 경제적 군사적 압박을 가했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김일성 비밀 교시]를 연재했다. 10.26직후부터 김일성이 간첩과 그 관련자들을 3호청사에 모아놓고 거의 연일 지령을 내렸다. 김일성 교시에 의하면 김일성은 아웅산 테러가 발생하기 1개월 전인 19839월에 아웅산 폭파 지시를 한 것으로 기사화돼 있다. 빈틈없이 감쪽같이 해치워야 한다고 지령한 것이다. 남조선의 대통령이 각료들을 이끌고 동남아를 순방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작전부에서 결사대를 파견해 보겠다고 했다는데 절대로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틀림없이 해야 합니다. 버마가 허술한 나라라고 해서 너무 쉽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방문 일정에 따라 사전 답사도 해 보고 빈틈없이 잘 준비를 해서 감쪽같이 해 치워야 합니다. 만약 이번 작전에서 성공하게만 된다면 결정적 시기가 성큼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김일성은 197911월부터 19804월에 걸쳐 남한에 전민적인 봉기를 일으키라 지시했고, 한 달 후인 53일부터 남한에는 무서운 속도로 폭력 시위가 전국적으로 번져나가 515일에는 서울역에서 10만 이상의 학생 시위대가 버스로 경찰을 깔아 죽이는 등 폭력 시위가 자행됐고, 급기야 내무장관은 치안을 계엄군에 맡아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광주 5.18 폭력 시위에 대해 김대중은 김일성의 지령을 받았을까? 손에 잡히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그랬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의혹들은 많이 있다. 거물 간첩 김용규가 폭로한 그대로 1967년 대규모의 간첩들이 목포로 몰려가 김대중을 당선시키기 위해 열띤 선거전을 치렀는데도 아무도 몰랐듯이 광주에서 간첩이나 점화 기폭조들이 침투하여 활동을 했다 해도 우리 정부나 국민이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김용규의 폭로 그대로 1967년 목포의 국회의원 선거전에서 대규모 간첩들이 활동을 했다면, 현대사 소요 사건 중 가장 큰 광주사태에는 얼마나 많은 간첩이나 전문가들이 내려와 특수 공작을 했을까? 이런 의문은 조금도 이상한 의문이 아닐 것이다.

 

우익진영에 몸담고 북한에 충성하는 제2의 김대중 조갑제

 

 

저자에 비하면 군에 대해 문외한이라 할 수 있는 조갑제는 북한군 600명이 내려왔다면 그 많은 병력이 어떻게 발각되지 않았느냐고 열변한다. 침투했다면 계엄군과 교전이 있었어야 했는데 교전이 없었다고 목청을 높인다. 이런 이유를 들어 북한군이 절대로 오지 않았으며, 만일 단 1명이라도 침투했다면 자기 목숨을 내놓겠다는 주장을 수많은 방송을 통해 쏟아냈다. 하지만 북이 600명을 보냈다면 그 600명은 소규모 단위로 극비 침투시켜 모은 병력의 수다. 어느 바보 같은 지휘관이 그 600명을 남한 국민의 눈에 뜨이도록 대오를 갖추게 해서 한꺼번에 내려 보내겠는가? 조갑제에 물어야 한다. 황장엽이 증언하는 5만 명의 간첩이 남한에 있다면, 5개 사단 규모에 해당하는 엄청난 수의 5만 명이 한꺼번에 대오를 갖추어 보란 듯이 내려왔다고 생각하는가를. 그 어느 지휘관이 겨우 600명을 60만 한국군과 교전시킬 목적으로 내려 보내겠는가를, 북한특수군은 UN에 걸리지 않기 위해 철저하게 북한군이라는 신분을 감추고 증거를 인멸하면서 공작을 하기 위해 침투되는 것이지, 공개적으로 전투를 하려고 침투되는 것이 아니다. 조갑제에 또 물어야 한다. 1983109일의 아웅산 테러를 감행한 북의 공작 조직이 군대식 대오를 갖추어 입국했으며, 버마(미얀마) 군대와 교전을 하려고 입국했는가를. 이 질문은 참으로 어리석고 유치한 질문이지만 이후 조갑제에게 던져져야 할 질문들이다. 그런데도 좌익들은 조갑제를 방어용으로 사용한다. “조갑제 선생도 북한군 오지 않았다고 하는데 지만원이 뭘 안다고 망언을 하는가?”

 

 

2020. 5. 8. 지만원

http://www.systemclub.co.kr/

 

 

 

 

※외부 필자의 기고는 <더뉴스코리아>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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