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 대구빈민들의 구세주 이재용 치과병원 원장

김두용 기자 | 기사입력 2021/01/02 [11:25]

[인물포커스] 대구빈민들의 구세주 이재용 치과병원 원장

김두용 기자 | 입력 : 2021/01/02 [11:25]

▲ [인물포커스] 대구빈민들의 구세주 이재용 치과병원 원장 / 사진출처=네이버  © 더뉴스코리아


[더뉴스코리아=김두용 기자]
대구남구청장, 환경부장관,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을 거쳐 60세 가까운 나이에 다시 본업인 치과 병원을 운영하는 이재용 치과병원장에 대한 궁금증을 경북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이었던 이도수 교수와의 대담으로 풀어본다.     

 

: 이재용 치과병원장은 대구에서 지명도가 높기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고들 합니다. 그분의 고3 담임이었던 교수님께서 그분에 대한 인물평을 한마디로 해주실 수 있나요?

 

: ‘대구빈민들의 구세주 이재용이라 평하겠어요.

 

: 무슨 근거로 그렇게 평하시는지요?

 

: 그가 대구남구청장, 환경부장관,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등 고위 행정직에 종사하느라 10년가량 치과치료에서 손을 놓고 지냈지요. 그때 이미 60세 가까운 나이였으니 으레 은퇴하여 유유자적한 삶을 즐기겠지 생각했어요. 그런데 느닷없이 대구 미팔군 후문 빈민촌에서 다시 치과병원을 개원한다는 연락이 왔어요. 내가 개원축하 화환을 하나 보내겠다는 의향을 밝혔더니 축하화환은 사절하겠다면서, 꼭 성의를 표하고 싶으면 미팔 군부대 주변 빈민들에게 나누어 줄 쌀을 소량 기부해달라고 했어요. 나는 소량의 쌀을 갖고 현장에 가보고 그의 치과병원 개업은 실패로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어요.

 

: 왜 그런 생각을 하셨나요?

 

: 의료행위 중 치과 치료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장 격무인 것은 누구나 다 인정 하지요. 더구나 10년가량 손 놓고 지나는 동안에 최신 치료술이 엄청 많이 도입되었는데 무뎌진 손으로 신진의사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겠나 싶었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서울대학교치대출신이라는 자부심으로 최신치료술을 익히려고 안간 힘을 쓰겠지만 젊은 시절 신장개업 때와 같은 에너지가 분출하기는 힘든다는 것이 치명적인 약점이라 생각했어요.

 

: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 젊은 의사들은 의사자격증을 얻기까지 투자한 금전과 땀의 대가를 뽑아야 된다는 각오 로 사생결단 노력하지요. 그러나 어느 정도 그 대가를 보상받았다고 느끼는 시점부터 여유부리며 살고 싶어지기 마련이지요.

 

: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됩니다. 돈도 명예도 다 누려본 그분이 그 연세에 사상결단 고생길로 들어설 이유가 없을 테니까요.

 

: 맞아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내가 불안한 심정으로 그 치과에 수시로 들려봤어요. 그런데 나의 불안한 심정을 비웃기나 하듯 병원 대기실에는 늘 환자가 득실거려요. 그 후 차츰 그 비결을 깨닫게 되었어요. 치과 치료를 받기 어려운 인근빈민들을 대상으로 무료진료를 해주면서 최신치과치료술을 익히고 졸업한 후배치과의사를 고용하여 임플란트 등 최신기술을 전수받고 있었어요. 그 모든 과정을 예의주시한 내가 과연 이재용은 초능력적 판단과 의지의 소유자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어요.

 

: 그분이 대구빈민들의 대부라는 호칭이 붙은 것은 그렇게 하여 얻은 것입니까?

 

: 극빈자들에 대한 무료진료는 그의 활동 중 극히 일부일 뿐이었어요. 그가 남구청장으로 재임 시에 관내의 빈민구제사업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당시 전국이 떠들썩했어요. 내가 당시에 대구 남구에 거주했기에 그의 빈민구제활동을 돕기 위한 소후원회의 회장을 맡기도 했어요. 그러다보니 이재용과 나와의 사제동행역사는 어언 40년이 넘어요.

 

: 이재용장관의 특이점에 대해 좀 더 소상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 이재용은 경북고 3학년 6반 출석번호 35번 학생 때나 장관을 지낸 60대 중반 때나 175cm 정도의 후리후리한 키에 60kg 전반의 체중을 유지하는데, 그 체격에서 뿜어내는 에너지는 보통사람의 2~3배지요. 그의 특이성격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일화 한 토막을 소개할까요?

 

: 예 그렇게 해주세요.

 

: 이재용이 서울대학교 치대를 졸업하고 공중보건의 복무를 마친 후 대구시 남구 대명동에서 이재용치과 개업을 했을 때 경북고 3학년 6반 졸업 동기들이 그 병원에서 반창회 모임을 갖게 되었어요. 그 반창회에 담임 선생으로 초대받은 내가 막 장내에 들어서니까 이재용 원장이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면서 ~! 뽀빠이(경고 재직 시 나의 별명)온다!”라고 말하며 조용히 시켰어요. 그리고는 일제히 일어나 나에게 큰 절하라고 명하더군요. 이어 그는 능청스럽게 선생님, 얘들이 나이 30이 넘어도 철이 덜 들어 선생님 별명을 마구 부르는데 그러면 안 되지요. 그래서 제가 선생님의 아호을 하나 지어 드리기로 했습니다. 선생님의 한자 이름 중 길 도자와 물가 수자를 한글 식으로 풀어서 물길이라는 아호로 부르기로 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내가 좋다고 하여 물길이 나의 아호가 되었어요. 이 일화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이재용은 보스기질이 강하고 임기응변에 능하기에 일개 치과병원장으로 만족할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 그런데 대구에서 이재용 장관을 좌편향 정치가로 보는 시민들이 적지 않아 보입니다.

 

: 그건 나도 알아요. 그러나 이재용이 소위 강남 좌파가 아니라는 점에서 나는 그를 옹호해 왔어요. “대구빈민들의 구세주라는 칭호 속에 그가 약자 편임을 암시하잖아요. 실제 그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동정심과 배려심이 남다름을 내가 누구보다 잘 알아요. 현재 집권세력은 약자를 위하는 체하면서 자기들의 잇속만 챙겨왔기에 국민들의 적대감을 키워왔잖아요. 이 재용은 30대 초 치과 개업 할 때, 마련한 대명동 서민주택 파크맨션에서 수 십 년째 살고 있다고 들었어요. 그런 중에도 대구 대명동 빈민촌에서 그가 구제해준 무의탁 노인들, 희망의 일자리를 마련해준 청소년들이 부지기수임을 그 운동에 동참해온 내가 누구보다 잘 알아요.

 

: 보수정서가 강한 대구에서 그가 약간의 변신만 했다면 대구시장 자리는 따 놓은 당상이었을 텐데 라며 안타까워하는 시민들이 적지 않은데 교수님이 그런 언질을 좀 주시지요.

 

: 입신출세를 위해서 정당 옮기기를 손바닥 뒤집듯 하는 풍토에서 나보다 판단력이 뛰어 난 제자에게 어설픈 충고를 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다만 요즘 들어서는 대구 출신 천재 소설가 조두진의 소설 <북성로의 밤>을 영화화하는 일에 이재용 장관이 나서 주면 좋겠다는 생각은 가끔 하곤 해요. 조두진 작가도 빈민에 대한 동정심에서 이 장관 못지않거든요.

 

: <북성로의 밤>을 영화화하면 대구시민들의 긍지를 살릴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 그럼요. 한때 대구가 한반도에서 세 번째 대도시였을 뿐 아니라 대구 북성로의 미나까이 백화점이 조선 최초의 백화점으로 근대적 물류 유통의 허브였어요. 그게 영화화되면 부산을 배경으로 국제시장 못지않은 흥행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더구나 일본거상이 세운 미나까이 백화점에서 지척거리에 삼성재벌의 창업자 이병철이 삼성 상회를 열어 경쟁심을 붙태운 애기와 이에 곁들여 당대 대구의 명물 여성광인 금달래 얘기를 양념삼아 끼워넣으면 흥미진진한 영화가 될 것입니다. 대구 북성로가 이미 대구의 근대화거리관광코스로 전국적 유명세를 타고 있으니 충분히 가능한 구상이라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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