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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 대구 출신 글로벌농정 CEO 김재수 장관

김두용 기자 | 기사입력 2021/01/04 [10:09]

[인물포커스] 대구 출신 글로벌농정 CEO 김재수 장관

김두용 기자 | 입력 : 2021/01/04 [10:09]

▲ [인물포커스] 대구 출신 글로벌농정 CEO 김재수 장관   © 더뉴스코리아


[더뉴스코리아=김두용 기자]
대구 출신으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지낸 김재수 박사에 대한 인물평을 들어보기 위해 경북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이었던 이도수 교수를 인터뷰했다.    

 

: 교수님께서 경북고등 재직 당시의 제자였던 이재용 환경부장관에 이어 김재수 농림부장관까지 소개하게 되었으니 교수님은 장관 양성을 위한 특별교육이라도 실시하셨습니까? 

 

: 실은 두 사람이 같은 학년이 아닙니다. 이 장관은 내가 32세 때 고3 담임을 맡은 자연계 반 소속이었고, 김 장관은 33세 때 고3 담임을 맡은 인문계 반 소속이었으니까요.

 

: 김재수 박사도 재학시절 이재용 장관처럼 보스기질을 보였습니까?

 

: 아니요. 정반대였어요. 73년도 경북고등 3학년 5반 소속이었던 김재수는 서울대학교에 지원해도 합격할 만큼 성적이 우수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고3 시절 내내 학부모가 진학상담을 위해 학교를 방문하거나 전화를 걸어오는 일이 없었어요. 대학 입시원서를 낼 때도 학생의 의사에 따라 경북대학교에 지원했어요. 합격자 발표 때 보니 경북대학교 인문사 회계 전체 수석이었어요. 3년 후, 그가 대학 4학년 때 행정고시 전국 최연소 합격자로 신문에 보도된 것을 보았어요. 그 후 30여 년 간 그에 관한 소식을 듣지 못하다 내가 정년 퇴임한지 5년이 지난 70대에 때마침 한류바람이 세계로 번질 한류추적을 위해 영어권 6개국을 순방하다 유럽에서 글로벌농정 CEO 김재수 박사에 대한 소식을 접하게 되었어요.

 

: 김재수 박사가 무슨 일을 하여 글로벌농정 CEO가 되었나요?

 

: 김재수가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농림부에서 전문성을 길러 엘리트관료로 발탁되어 워싱턴 주재 농무관으로 파견되었을 때 한식 세계화를 위해 심혈을 기울인 결과로 한식전도사로 불리게 되었어요. 농림부과장시절에 OECD가입을 위한 준비를 독자적으로 해온 공로로 정부대표로 OECD에 근무하면서 프랑스농업에 대해 견식을 넓혔어요. 그 후 농촌진흥청장과 차관이 되어 파리에서 열린 G20 농업장관회의에 장관 대신에 참석했어요. 그 회의에서 의견대립이 심해 공동성명조차 발표하지 못할 지경이었어요. 그때 한국 대표 김재수가 능란한 외교력을 발휘하여 원만한 해결을 보게 되었어요. 이에 프랑스 정부에서 외국인에게 좀체 수여하지 않는 기사(Chevalier)작위를 수여했어요. 그가 워싱턴주재 농무관 재직 시에도 수많은 난제를 해결한 공로를 인정하여 미국 하원의원이자 한국전 참전 용사인 찰스 앵글 의원이 기념패 수여와 함께 김재수의 날을 지정해주기도 했답니다

 

: 정말 글로벌농정 CEO로 인정받을 만하네요. 그런 글로벌농정 CEO가 당연히 국내에서 농정 최고관료인 장관에 발탁되었겠네요.

 

: 천만에요. 김재수가 농정에는 그 누구도 경쟁상대가 없을 만큼 독보적인 존재였기에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농축산식품부장관으로 임명되었어요. 그런데 그게 화근이 되어 그가 하마터면 죽음의 수렁으로 빠질 뻔했어요.

 

: 왜요?

 

: 박근혜 대통령 임기 말에 끝마무리를 잘하기 위해 아껴두었던 두 유능한 사람을 장관에 임명했어요. 그러나 야당에서는 박 대통령을 임기 말 레임덕에 빠뜨리기 위해 김재수를 똥칠망칠해서 낙마시키려는 작전을 폈기 때문이지요.

 

: 그 훌륭한 글로벌 농정 CEO에게 어떻게 똥칠망칠 할 수 있었습니까?

 

: 내가 어느 날 아침 국내 모든 조간신문 정치면이 김재수의 인면수심 행태 폭로 보도로 도 배질되어있는 것을 보고 졸도할 번했어요. 그래서 본인에게 사실 확인을 위해 메일을 보냈어요. 그가 메일로 해명해온 내용을 보고 김재수가 고3때 학부모가 학교에 한 번도 나타나지 않은 이유와, 서울대학을 지망해도 합격할만한 성적인데도 학생이 독단적으로 경북대학교를 지망한 이유 등 그 모든 궁금증이 한꺼번에 풀렸어요.

 

: 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 알고 본 즉, 김재수가 초등학교 입학 전에 부모가 이혼하고 아버지의 후처로 들어 온 분에게서 난 이복형제자매들과 같이 자랐데요. 그런 김재수가 결혼한 후에는 혼자 사는 생모를 불쌍히 여겨 눈치껏 찾아뵙곤 했는데 장기간 해외 체류기간동안에는 어쩔 수 없이 생모가 차상의료혜택을 받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그것을 꼬투리 잡아 장관후보자가 모친을 홀대하고 있다고 모든 언론에서 대서특필한 것이었어요. 만약 언론사 기자들이 사실대로만 보도했다면 김재수는 결손가정에서도 올곧게 자라 본인도 성공하고 나라에도 공헌한 모범인생에 대해 전 국민의 박수갈채를 받았을 터인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싶어 치가 떨렸어요.

 

: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 고립무원에 빠진 김재수를 살려야 되겠다 싶어 내가 나섰지요. 우선 이 사람이 억울함을 참지 못해 자살할지 모른다 싶어 수시로 전화와 메일로 위로하면서 위기탈출을 위한 방안을 제시했어요.

 

: 어떤 방안을요?

 

: 자네를 죽이려하는 악마들에게 눈물을 머금고 잠시 굽혀보라고 타일렀어요. 그랬더니 그 이튿날 당장 국회에 나가 적대세력의 보스 격인 의원들에게 허리를 90도 굽혀 읍소했어요. 그게 주효했는지는 몰라도 두 사람의 장관후보 중 김재수가 구제되어 10개월의 장관직을 수행했기에 불명예퇴직을 면하게 되었어요.

 

: 비록 사제인연이긴 하지만 교수님의 제자사랑은 특별하십니다.

 

: 그 사람의 아버지가 살아있었다면 내가 그렇게 적극 나서지는 않았을 겁니다. 비록 제자라 해도 결손가정에서 상처받고 살아오면서도 한 번도 그 내색을 하지 않고 모범인생 을 살아온 데 대해서 존경심이 생기더군요. 그래서 내가 김재수처럼 존경스러운 제자나 후배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내 인생 마지막 저서 <나의 연하스승님들>을 펴낼 결심을 하게 되었어요.

 

: 그런 특이한 생각을 가지셨기에 자랑스러운 후배제자에 대한 시리즈가 줄줄이 나오는군요. 김재수 장관 얘기가 나온 김에 그 분의 농정 관련 업적을 좀 더 소개해주시지요.

 

: 김재수의 저서 세 권을 보면 그가 농정분야에서는 한국에서 독보적인 존재임을 알 수 있어요. <미국농업정책과 한국농업의 미래>, <한국음식 세계인의 식탁으로>, <식품산업의 현재와 미래>가 그것인데, 그중에서 나의 가장 큰 관심을 끈 저서는 한식세계화에 대한 두 번째 책이었어요. 그 책의 요지만 소개하겠어요. 발효식품인 김치는 조류독감, 코로나 같은 바이러스 예방에 특효가 있고, 또 다른 발효식품인 된장은 암 예방에 특효가 있으며, 막걸리는 저가이면서 서양 포도주 못지 않은 맛과 영양분이 있는 주류라는 것을 실험과 세계각국시장 개척을 통해 입증했어요.

 

: 김재수 장관은 평생 쌓은 행정 경험을 살려 고향인 대구시를 위해 헌신봉사하기 위한 뜻을 밝힌 바가 있었지요?

 

: , 대구시장 선거에 나서기도 하고 국회의원 선거에도 뜻을 내어봤지요. 그러나 한국의 정치풍토는 후보자가 쌓은 내공보다 다른 요인이 더 작용하는 것이 문제다 싶어요. 행정관료에서 정치가로 변신하는데 시간이 필요해 보여요. 썩히기 아까운 인재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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