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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 평생 한 우물만 파온 순수학자 김문기 교수

김두용 기자 | 기사입력 2021/01/11 [10:01]

[인물포커스] 평생 한 우물만 파온 순수학자 김문기 교수

김두용 기자 | 입력 : 2021/01/11 [10:01]

▲ [인물포커스] 평생 한 우물만 파온 순수학자 김문기 교수   © 더뉴스코리아


[더뉴스코리아=김두용 기자]
2015년도 대구시문화상학술부문 수상자인 국문학자 김문기 교수의 인물 소개를 위해 평소 김 교수와 친분을 유지해 온 이도수 교수와 인터뷰를 했다.

 

: 교수님은 영문학자로 알려져 있는데, 국문학자인 김문기 교수와는 어떻게 교분을 트게되었습니까?

 

: 나는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과 출신이고, 김문기 박사는 국어과 출신인데다 입학연도도 제가 7-8년 앞이라 재학 중에는 서로 일면식도 없었어요. 그러다가 내가 정년퇴임 후에 무슨 일을 그 분과 같이 도모하면서 친분을 쌓게 되었어요.  

 

: 어떤 일을 같이 도모하셨습니까?

 

: 경북대학교 창립 주역 중 한 분이자 한국의 페스탈로치라는 칭호로 추앙받은 원암 이규동 교수님 탄신 100주년을 맞아 나는 원암 선생님 일대기 집필을 맡고, 김문기 박사는 원암문화재단의 상임이사이었기에 상호 협력 관계가 형성되었어요.

 

: 교수님께서 김문기 교수에 대한 총평에서 순수학자라는 수식어를 붙이셨는데,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 그렇겠지요. 우리나라에는 정말 순수학자가 희귀하기 때문에 그런 수식어를 일부러 붙인 것입니다.

 

: 왜 그렇습니까?

 

: 우리나라역사에서 고려 3대왕 광종 때 중국으로부터 과거제도가 들어온 이후부터 학문은 벼슬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버렸어요. 그러기에 순수학자는 극히 드물었지요. 일본에서는 노벨상수상자가 30명에 육박하는데 한국과 중국에서는 인구비율로 따지면 일본의 50분의 1에도 못 미쳐요.

 

: 일본도 한때는 동양문화권이였기에 중국과 한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터인데요?

 

: 일본은 중세해양시대가 열릴 때부터 아세아문화에서 벗어나 유럽문화로 진입했지요. 그 결과로 서양의 실용주의문화와 과학문명을 받아들였지요. 그 결과 아시아 40억 인구 중 노벨상 수상자의 60% 이상을 인구 1억에 불과한 일본이 차지하게 되었지요.

 

▲ [인물포커스] 평생 한 우물만 파온 순수학자 김문기 교수   © 더뉴스코리아

 

: 조그만 섬나라 일본이 아시아 노벨상 수상자의 절대 다수를 차지한 이유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지요.

 

: 명분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문화이기 때문이지요

 

: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해주시지요.

 

: 일본에서는 조상대대로 한 가지 직업을 계승하면서 그 가문 특유의 노하우를 개발하여 기업 창업자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예가 수두룩하지요. 우리나라에서는 부모의 가업을 잇는 자녀들을 보고 하는 가장 심한 악담은 자손대대로 그 짓이나 해쳐먹고 살아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분상승은 공부시켜 벼슬길에 오르는 외길뿐이라 생각하기에 일국의 법무장관이라는 자가 능력도 자질도 안 되는 자식들을 부정한 방법으로 법관을 만들고 의사를 만들려고 별별 수를 다 쓰는 꼴을 전 국민들이 지켜봤잖아요.

 

: 듣고 보니 다 맞은 말씀이네요. 그럼 본론으로 돌아가 김문기 교수님에게 순수학자라는 수식어를 붙인 배경을 설명해주시지요.  

 

: 그 설명을 하기 전에 대구시 문화상 학술분야수상을 좀 과장하면 로또 당첨만큼 어렵다는 말부터 해두어야겠어요.

 

: 아니, 왜 그렇습니까?

 

: 그 수상도 하나의 벼슬이라고 보는 문화 때문이지요. 학술상은 학문외길로 매진한 학자에게만 주어져야 하는데 대학에서 총장, 처장, 학장 등 벼슬만 추구하던 자들이 문화상을 더 높은 벼슬로 오르기 위한 발판으로 여기고 군침을 삼키거든요.

 

: 결국 김문기교수님께서 그 상을 수상한 것은 지극히 타당하다는 말씀이군요.

 

: 그렇습니다. 김문기 교수님은 경북 북부 지방의 시골학교인 문경종합고등을 졸업하고 경북대학교 사대 국어교육과에 입학하면서부터 발군의 능력을 인정받아 모교에 교수로 채용되어 퇴계학연구소장을 비롯한 순수학술분야의 중책만 맡아오셨어요. 김교수는 신라시대의 향가, 고려시대의 속요, 경기체가 등 고전시가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로 국문학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수상한 것입니다. 경북대학교에 최장기근속경력을 갖고서도 학내 벼슬에 욕심을 내지 않고 오로지 학문외길을 매진해왔으니 학자로서 귀감이 되었다고 봅니다.

 

: 김문기박사님께서는 정년퇴임 하셨겠지요?

 

: . 정년퇴임하신지 5년쯤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퇴임 후의 활약이 더욱 괄목할 만 합니다.

 

: 어떤 일을 하시는데요?

 

: 상주에 있는 유형문화재 동학교당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기 위한 노력을 주도적 으로 해 오고 계십니다.

 

: 동학교당이 어떤 곳입니까

 

: 경북 상주시 은척면 우기리에 1924년에 지어진 전통건조물입니다. 그 건축물은 동학포교를 위해 동학교의 남 접주이었던 김주희 선생이 지은 것으로 거의 한 동네를 이루고 있어요. 그 중요한 문화재가 사장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김문기 교수가 <동학가사 주해서>를 펴내고 상주시의 협조를 받아 동학축제를 매년 열어왔어요. 나도 거기에 몇 번 가봤는데 가치 있는 문화재가 엄청 많이 소장되어 있는 데 대해서 놀랐어요.

 

: 구체적으로 어떤 문화재들입니까?

 

: 동학포교를 위해 1924년에 김주희 선생이 지은 동학교당, 동학교주와 교도들이 입은 의상, 동학경전, 동학가사 등이 고스란히 소장되어있어요.

 

: 그 귀중한 문화재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희망이 있습니까?

 

: 김문기 박사가 눈부신 활약을 하고 계시는데도,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동학이 남긴 유적으로는 상주동학교당이 유일한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어려운 이유는 동학란의 근원지인 호남과의 연계가 난항을 겪기 때문인 것 같아요. 호남에는 동학관련유형문화재는 없고 녹두장군노래같은 무형문화재만 있으니 두 가지를 합하면 좋은 국가문화재로 세계에 내놓을 수 있을 텐데 그게 어려우니 안타까워요. 김문기 교수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고향인 문경에 설립되어있는 경상북도 문경대학교의 특임교수로 임명되어 지역민들에게 민족문화유산교육에 열정을 쏟고 계십니다. 말이 후배이지 내가 먼발치에도 따라가기 어려운 존경스러운 연하스승 김 문기 박사의 건승을 빌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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