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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 대구유림의 자존심 옻골 경주 최씨마을 터줏대감 최윤돈 교장

김두용 기자 | 기사입력 2021/01/25 [11:34]

[인물포커스] 대구유림의 자존심 옻골 경주 최씨마을 터줏대감 최윤돈 교장

김두용 기자 | 입력 : 2021/01/25 [11:34]

▲ 박정희 대통령의 모교. 대구사범학교 터에 지어진 경북대학교사대부중고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촬영 (좌측 두번째 : 최윤돈 교장)     © 더뉴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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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뉴스코리아=김두용 기자] 대구의 대표유림문중으로 널리 알려진 대구 동구 둔산동 옻골 경주 최씨마을의 터줏대감 최윤돈 교장선생님의 인물평을 위해 교육계동지인 이도수 교수와 인터뷰했다.

 

: 교수님은 최윤돈 교장님의 교육동지로 알져져 있는데 어느 학교에서 같이 근무하셨어요?

 

: 30대 초에 대구여중에서 1, 경북고등에서 3년 같이 근무했습니다.

 

: 그분의 인격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 영국신사.

 

: 영국신사는 교수님처럼 영문학 전공자로 서양 매너가 체질화된 분에게 붙이는 말인데요?

 

: 그 분은 수학 전공자이지만 영문학 전공자인 나보다 더 서양식 매너에 익숙하거든요.

 

: 그 분이 대구의 대표적 유림마을인 옻골 경주최씨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일부러 쇼맨십을 발휘하는 것이 아닐까요?

 

: 그 분 본성이 원래 점잖은데다 가문 체통도 염두에 두고 처신하니 그런 호평을 받겠지요. 솔직히 나는 유교 집안의 11대 종손이지만 유교에 대한 극도의 거부감 때문에 선비인 척 하는 사람들을 눈꼴사납게 보는 편인데 최 교장님에게는 그런 반감이 안 들어요.

 

: 교수님께서 유교 전통에 대한 극도의 반감을 가지셨다는 말씀은 뜻밖인데요.

 

: 내가 유교 가문의 11대 종손으로서 유교의 허례허식에 진저리를 느껴 거기서 탈출하기 위해 미국이민을 위해 하와이에 가서 간을 보다가 <100일간 인도인으로 살아보기> 라는 책을 쓰는 것으로 마음을 돌려 귀국했거든요.

 

▲ 대구유림의 자존심 옻골 경주 최씨마을 터줏대감 최윤돈 교장  © 더뉴스코리아

 

: 그 책을 쓰신 것과 회심하여 귀국한 것과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데요?

 

: 한국 유교문화의 폐단은 농경문화의 대가족 제도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그런데 농경사회가 무너지고 신유목사회로 변한 한국에서 구식 유교전통을 지키기가 힘들어 미국 이민을 꿈꾸었죠. 하와이에서 100일 간 지내면서 인도 출신 동갑내기의 기막힌 사연을 들으면서 한국은 인도에 비하면 천국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 돌려 귀국했어요. 이런 얘기는 오늘 인물 소개와는 별 관계가 없으니 이 정도로 해두지요.

 

: 그래도 내친김에 한 마디만 더 물어보겠습니다. 인도인 동갑내기 친구의 기막힌 사연을 간단하게나마 귀띔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 그러지요. 당시 42세였던 때 하와이에서 만난 동갑내기인 인도인 친구는 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8형제의 3대 자녀 40여 명이 한 집에 산대요. 장남인 자기가 우여곡절 끝에 박사 학위를 받은 그가 아내를 하와이에서 출산 시켜 미국 국적을 갖고 태어날 아기를 앞 세워 미국 이민을 꿈을 이루기 위해 하와이에 왔다고 실토했어요. 곧 태어날 아기가 몇 번째 자식이냐고 물어보았더니 열한 번째라기에 내가 졸도할 번했어요. 그 얘기는 그만 하기로 하고, 더 궁금증이 나면 그 책 <100일간 인도인으로 살아보기>를 읽어보구려.

 

: 그건 그렇고, 옻골 마을이 대구의 대표 유림마을이 된 유래를 애기해주시지요.

 

: 최씨는 우리나라 3대 성씨 중에 하나이지요. 삼국시대 최고 선비로 중국에 까지 널리 알려진 고운 최치원 선생이 그 시조이고, 고려 때는 최씨 무단정치의 주인공이 해주 최씨였지요. 그러나 조선조 중기부터 경주최씨의 원류인 경주 토박이 최씨 가문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본보기를 보임으로서 한국 귀족 가문의 대표로 인정받게 되었어요.

 

: 경주최씨 가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죠.

 

: “3대 부자 드물다.”는 말이 있는데, 경주 최 부자 집은 12300여 년간 만석꾼을 유지한 예외적인 부호였어요. 그 비결을 요약해서 설명하자면 권력욕에 집착 말고,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풀어 남에게 원한을 사지 말라는 것이었어요. 그것이 한국식 귀족의무인 셈인데, 서양의 귀족의무인 'nobles oblige'와 일맥상통하지요. 서양은 기사도 문화인 반면에 한국은 양반 선비 문화란 점이 달랐을 뿐이지요.

 

: 경주 최 부자 집과 옻골 경주최씨 집성촌과는 어떤 관계이지요?

 

: 같은 혈맥인데 옻골 마을 경주최씨 입향조 대암 최동집 선생은 임진왜란 후에 새로 부흥한 영남유림들의 주맥인 한강 정구 선생등과 교유하면서 높은 학덕을 세워 아랫대에 물려 주었어요. 일정시대 대구를 다스린 일본관헌들도 대대로 의병을 많이 배출한 옻골 최씨 가문을 제일 두려워했답니다.

 

: 최윤돈 교장님께서는 어떤 인성을 가지셨기에 교수님의 존경을 그처럼 받으시지요?

 

: 최 교장선생님은 비록 명문 선비 가문 출신이지만 구식백면서생의 탈을 완전히 벗고 실용 학문을 숭상한 학자가문을 형성했어요. 최윤돈 교장선생님은 경북대학교 사대 수학과 수석 입학에 수석 졸업자이고 동생 최상돈 박사는 경북대학교 자연대 물리학과 교수로 정년퇴임 했으며 아들 최기창은 경북대 공대 전자공학 전공자로 삼성전자 책임연구원으로 일한대요.

 

: 듣고 보니 한 가족 모두가 구시대의 백면서생에서 완전 환골탈태한 신식학자들이로군요. 그야말로 글로벌시대의 귀족가문이네요.

 

: 그러기에 최 교장이 대구 중등 교직자들 사이에서 구심점 역할을 해오셨지요. 최 교장님이 대구의 공립 중·고등학교 교장회 회장을 역임하셨을 뿐 아니라 한국유림들의 최대 모임인 박약회의 대구지회장도 맡으셨어요.

 

: 박약회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겠습니까?

 

: 박약회(博約會)는 퇴계 선생의 선비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20037월에 설립한 사단법인으로 전국에 약 4만여 회원을 거느리고 있어요. 박약회의 규약에서 퇴계 선생의 선비정신을 현 실정에 맞게 구현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기에 최윤돈 교장님이 그 거대 단체의 지역책임자로 추대되지 않았나 싶어요.

 

: 교수님께서 최윤돈 교장님에 대한 존경심은 그분의 유연한 성격 때문인 것 같네요?

 

: 맞아요. 저보다 연상인 다른 유교숭상학자들과는 소통이 잘 안 되는데 최 교장님과는 한 번도 의견 충돌이 없었으니 그건 전적으로 그 분의 융통성과 유연한 성격 덕택이라 봅니다. 그 분과 대조적 성격을 지닌 유명한 유학자 한 분과 나는 수 많은 마찰을 겪었는데...

 

: 재미있는 애기일 것 같은데 좀 더 자세히 애기해 줄 수 없을까요?

 

: 2년 연상인 공()모 박사는 최 교장님이 다닌 경북사대부고 출신으로 조상인 공자의 학문을 계승하기 위해 성균관대학교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고 내가 근무한 경상대학교 사대 국민윤리학과 교수로 근무하면서 학내에서 나와 가장 가깝게 지냈어요. 서로 의기투합하여 서산대사사명대사처럼 전국 명산을 돌아다녔어요. 한 번은 지리산을 헤매다니다가 같이 감기에 걸렸는데 인근 도시인 남원에 들려 나는 약방에서 감기약하나 사먹고 즉시 나았는데, 그 분은 양약은 절대금물이라며 한약방에 가서 처방첩약을 받아 항고에 넣어 몇 시간 달이느라 감기가 더 악화되어 곤욕을 치렀어요. 또 한 번은 40대 말에 단 둘이 천막을 짊어지고 태백산 일대를 종횡무진 돌아다녔어요. 때마침 몰아닥친 셀마 호 태풍으로 전국이 물난리가 났는데 그 분은 자기 선대 조상이 한반도에 처음 뿌리내린 강원도 정선 두문동으로 들어가자고 우기기에 내가 강력반대하여 정선버스정류소에서 헤어졌어요. 그 분은 혼자 두문동 마을 어떤 집에 기숙했는데 동민들이 간첩 용의자로 신고하여 곤욕을 치렀다는 후문을 들었어요. 나도 그로테스크지만 그 분은 더 지독한 그로테스크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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