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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 대한민국KW 김치명인 전윤자, 그녀가 살아온 길은?

김두용 기자 | 기사입력 2021/01/26 [13:43]

[인물포커스] 대한민국KW 김치명인 전윤자, 그녀가 살아온 길은?

김두용 기자 | 입력 : 2021/01/26 [13:43]

 

▲ [인물포커스] 대한민국KW 김치명인 전윤자, 그녀가 살아온 길은?  © 더뉴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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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뉴스코리아=김두용 기자] 김치연구소장이자 대한민국KW 김치명인 및 조리기능장 전윤자 명인을 만나 그녀가 살아온 길에 대해 들어봤다.

 

그녀는 비교적 배움의 기회가 적었던 50여 년 전, 한 여성으로서의 이야기와 그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아래의 김치명인 전윤자의 인생 스토리를 읽어보자.

 

저는 대구에 위치하고 있는 관문시장에서 작은 반찬가게와 김치연구소를 운영하는 63세 전윤자입니다. 시장에서 반찬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아줌마가 어떻게 여기에 올라왔을까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요식업만 30년 째 운영하고 있고, 늘 새로운 일에 도전 하고 있습니다. 힘든 직업이지만 한 번 시작해보자했던 것이 반찬가게였습니다. 가족들도 말리고 주위 분들도 말렸지만 세상 일이 힘들다고 포기만 할 수 없는 게 인생사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목표를 정하고 살았습니다. 저는 아직까지 꿈도 많고 호기심도 많습니다. 그리고 포기를 모르는 오뚝이입니다 겉으로 보면 작은 반찬가게를 운영하고 있지만 그 뒤에는 제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50여 년 전에는 여성들에게 배움의 기회가 적은 사회를 모두 당연하게 생각 했지만, 저는 그 당시 배우고 싶은 욕망이 컸습니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비록 학교는 못 갔지만 기술은 배워야겠다고 부모님께 말씀 드리니 여자는 집에서 조용히 살림이나 배워서 시집가는 게 제일 행복하다고 기술배우면 팔자가 세다고 하시니 그런 줄 알고 집에서 일만하다가 부모님 몰래 복장학원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학원에서 사용하는 교재가 일어로 되어 있어서 집에서 몰래 일어공부를 하다가 아버지한테 들켜 결국 공부할 기회를 놓친 채로 살아왔습니다.

 

▲ [인물포커스] 대한민국KW 김치명인 전윤자, 그녀가 살아온 길은?  © 더뉴스코리아

 

성인이 되고서야 저는 기술이 있어야 먹고산다고 생각하여 1979년 한식조리사 자격증취득, 1980년 운전면허취득 그리고 1981년에 결혼하여 식당을 운영하면서 미용사 자격증도 취득 했습니다. 배움의 한이 컸던 것인지 배우고 익히는데 재미가 있었습니다. 식당을 운영 할 당시에는 장사가 잘되어 아침 9시부터 새벽 4반까지 장사를 하였는데 작은 딸을 업고 일을 하다 보니 더운 여름날 저는 등에 땀띠, 딸은 배에 땀띠. 지금 생각하면 딸에게 제일 미안한 마음입니다. 여러 에피소드가 많지만 다 열거 할 수가 없네요.

 

장사가 잘되니 집도 사고, 땅도 사고, 아이들도 태어나고 너무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그렇게 자신감이 붙어 큰 가게를 오픈하였는데, IMF가 터지는 바람에 매출이 줄어들어 주저앉아도 보고, 또 다시 가족들이랑 힘을 합쳐 재기도 하고 그렇게 정신없이 주어진 하루에 최선을 다하고 살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제 나이 53살이 넘어가니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는 것 인지하고 정작 내가 하고 싶은걸 못하고 살았구나!‘ 더 늦기 전에 배워야 한다는 결심을 다짐하고 아침 8시부터 저녁 10~12시까지 일하며 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공부한 결과 검정고시 중·고등학교를 수료하였으며, 다행히 제 남편은 공부하고 싶어 하는 저를 이해 해주고 도와주었습니다.

 

검정고시를 수료하고, 저는 여성도 배워야 가정이고 사회가 발전한다는 마인드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학이라는 새로운 목표가 자연스럽게 생겨, 나만의 전문성을 만들고자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을 오가며 김치 소믈리에, 김치명인을 취득하였습니다. 그렇게 나에겐 음식이 전부였던 지식으로 전문대 식품학과에 입학 할 수 있었고 학교를 다니면서 국가공인 자격증인 조리기능장을 합격하고, 총장님께서 자격증 취득으로 장학금 일백만원을 주시는 것을 같은 과 학생들에게 여러 기회를 주고자 요리대회를 같이 준비하였습니다.

 

저는 김치재능기부를 하였고 학생들과 같이 장관상 받고 우수지도상도 받았습니다. 이를 통해 배움으로 나눔을 실천할 수 있구나를 깨닫게 되었고, 그 무엇보다 행복했습니다.

 

학교를 다니면서도 음식 관련 박람회 및 대회를 참여하면서 여성부장관상, 통일부장관상과 중국, 베트남 요리전시회 대상 등을 수상하면서 내 요리를 더 많은 곳에서 알릴 수 있었고, 더 알리고 싶었습니다.

 

여러 박람회와 대회를 다니면서 알게 된 좋은 인연들로부터 기회를 얻어, 다른 학교 식품조리학과로 편입하게 되었습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김치에 대한 연구는 계속 하였고, 내 요리를 더 발전시키고자 끊임없이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2016년에는 우엉 외 32가지 재료가 들어간 김치 특허를 등록하였고, 2019년에는 김치 팩 특허신청을 하여 현재 출원중입니다.

 

다른 이에게 음식이 주는 행복함과 음식으로 우리 몸을 건강하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로 대학원까지 준비하게 되었고, 지금 대학원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있어 음식은 곧 삶이고, 행복입니다. 모두가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음식을 뗄 수 없는 존재이기에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 삶을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선 먹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걸 알려주고 모두가 행복할 수 있게 만들고 싶은 마음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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