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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 이도수 교수의 <나의 연하스승님들> 소개시리즈 (11)

김두용 기자 | 기사입력 2021/02/17 [14:00]

[인물포커스] 이도수 교수의 <나의 연하스승님들> 소개시리즈 (11)

김두용 기자 | 입력 : 2021/02/17 [14:00]

 

▲ [인물포커스] 이도수 교수의 <나의 연하스승님들> 소개시리즈 (11) / 좌측부터 김주환 전 중구청장, 이도수 교수, 류종환 전 능인고 교장  © 더뉴스코리아


[더뉴스코리아=김두용 기자] 해방 전 개화기 대구 역사를
<미나까이 백화점>이라는 영화로 제작하는 일에 전력을 기울여 온 이도수 교수가 최근 이에 적극 동조할 동갑스승을 만나 기뻐하고 있다. 동갑스승 김주환 ()대구중구청장에 관해 이도수 교수로부터 직접 들어보기로 한다.

 

: 교수님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미나까이 백화점>을 영화화하는 일에 요즘 새삼 탄력이 붙었다고 들었는데 사실입니까?

 

: . 8년 전부터 내가 구상해왔으나 진척이 미적지근했는데 최근에 그 일을 다시 추진 할 의욕을 갖게 된 것은 그 사업의 당위성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해준 한 분을 만나게 된 때문이었어요. 그 분이 누구냐 하면 민선대구중구청장을 지낸 김주환씨입니다.

 

: 그 분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소개해주시지요.

 

: 김주환 전 대구 중구청장은 혈통으로 따지면 일본인이고 국적은 한국인입니다. 그런데 일본보다 한국에 대한 애정과 긍지가 더 강한 분입니다. 그 분은 임진왜란 때 왜군을 이끌고 와서 남해안에서 북으로 쳐 올라가 경상도 지역 점령을 책임진 우선봉장 사야가 장군의 13세손이라고 자기소개를 했어요.

 

: 어찌된 사연으로 그렇게 되었지요?

 

: 당시 22세였던 왜군 우선봉장 사야가 장군이 역사에 대한 안목이 있는 사람이라 야만족이었던 일본 민족에게 한자와 벼 제배 법, 철기문화를 전파해 준 은혜 민족 조선을 차마 짓밟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조선에 투항했어요. 그 투항지역이 청도에서 대구로 진입하기 직전에 있는 고개 팔조령 아래 우록이라는 계곡이었어요. 그래서 그곳에 녹동서원을 세워 장군을 기리는 장군의 묘소와 비석, 장군의 정신을 교육하는 교육관이 있어요.

 

: 그럼, 일본장군 사야가가 조선에 귀화함으로서 조선조정으로부터 벼슬과 성씨를 하사 받았다는 말씀이네요?

 

: 그래요. 성은 김해김씨의 일개지파로 예속시키고 함자는 충선공이라고 지어주었어요. 그래서 그 자손들이 대대로 내려와 13세손이 대구 도심지역인 중구에서 구청장에 선출 되기에 이르렀어요.

 

: 그런데, 이상한 것은 임진왜란 당시 거의 최고사령관 급에 속하는 사야가 장군의 나이가 겨우 22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저 보다도 훨씬 어린 나이네요.

 

: 그건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430년 전 당시 한국이나 일본이나 인간 평균 수명이 25세 전후이었거든요. 서양도 마찬가지였어요. 가뭄, 수해, 질병에 무방비로 죽었으니까요. 삼국시대부터 조선조 초기까지 약 1000년 동안 한반도 전체 인구가 600만에서 800만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했거든요.

 

▲ [인물포커스] 이도수 교수의 <나의 연하스승님들> 소개시리즈 (11) / 사진=녹동서원, 출처=네이버 doopedia © 더뉴스코리아

 

: 그렇군요. 본론으로 가서 김충선 공의 12세손인 김주환 전 대구중구청장이 교수님이 추진해온 "미나까이백화점 영화화사업"에 적극 동조한다는 말씀입니까?

 

: 그래요. 그 분을 접해보면 외모나 기질이 꼭 일본 사람이라고요.

 

: 외모는 일본인들이 한국인보다 평균적으로 체구가 약간 작다고들 하지요. 그런데 기질은 어떻게 다르지요?

 

: 일본인들의 기질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사무라이 기질이지요. 이에 비해 한국인들은 선비 기질이지요. 사무라이 기질은 정면승부를 노리는데 선비 기질은 겉으로는 점잖게 대하면서 뒤통수를 치는 편이지요. 그러기에 일본의 근세역사는 무사들 간의 힘겨루기 역사였는데 조선의 근세역사는 선비들 간의 붓장난으로 권력 투쟁을 해온 당파 싸움의 역사였지요.

 

: 그런데 김주환 전 청장님이 교수님이 추진해온 미나까이 백화점영화화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뭐라 생각하세요?

 

: 임진왜란은 일본이 조선을 군사적으로 지배하려는 야욕에서 비롯되었다면, 미나까이 백화점은 일본이 조선을 경제적으로 지배하려는 야욕에서 비롯되었어요. 임진왜란 때 그 분의 선조가 조선을 강제점령하려고 했던 것이 잘못이라는 판단으로 조선에 귀화했듯이 대구 북성로에 진을 친 미나까이 백화점도 결국 조선에 넘겨주고 외동딸마저 조선인 종업원과 결혼시켰어요. 그러니 그 거만한 일본인 거상의 운명도 조선에 귀화한 일본장군 충선공의 운명과 대동소이하다는 판단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 특히 대구 북성로가 김주환 전 중구청장이 직접 관할한 지역이라 그 역사에 대해 누구보다 자세히 알기에 그 애착도 남다르지 않을까 싶어요.

 

: 맞아요. 바로 그 점 때문에 내가 김 청장님을 만나게 된 것이 천재일우의 행운이라 생각하지요. 특히 김주환 청장님은 대구에서 태어나 도심지역의 명덕초등학교와 대구중학교를 졸업한 후 대구상고를 나와 북성로 일대에서 상업에 종사한 이력도 있어 눈감고도 그 일대 골목골목을 휘젓고 다닐 수 있다고 자부하십니다.

 

: 김 청장님이 교수님과 연령차가 어느 정도 되시지요?

 

: 동갑인데 정확히 따지면 내가 5개월 먼저 태어났더군요. 실제로 두 사람 중 누가 연상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80대인 우리 동갑내기 둘이가 합세하여 무슨 일을 도모한다면 그 누구도 왈가왈부 못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그건 왜 그렇습니까?

 

: 첫째로 두 사람이 똑 같이 만 81세 고령이라 무슨 야심을 품고 이런 일을 도모하는 것이 아님을 누구나 알기 때문이지요. 또 다른 이유는 두 사람이 다 흙수저 출신으로 천신만고 끝에 나름대로 성공한 사람이라는 긍지를 갖고 있어요.

 

: “미나까이 백화점을 영화화할 경우, 얻을 수 있는 소득은 뭐지요?

 

: 첫째, 잊혀져가는 대구의 근대사를 살려 대구시민들의 자긍심을 되살리는 것이지요.

 

: 대구시민들의 어떤 자긍심 말입니까?

 

: 해방 전까지만 해도 남북한 전체에서 경성이 첫째, 평양이 둘째, 대구가 셋째로 큰 도시였어요. 당시 경상남·북도를 관할하는 경상감영이 바로 대구 북성로 안쪽에 성 안에 있었어요. 일본인 거상 도미주로가 한반도와 중국을 경제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대구 북성로에 동양 최초의 백화점을 차린 것이 미나까이거든요. 현대 상술의 귀재 도미주로 사장이 대구 북성로에 미나까이 백화점을 차리자 조선 상술의 귀재 개성상인 이근무가 지척거리에 무영당이라는 백화점을 차리고, 경남갑부 이병철이 1km거리에 삼성상회를 차려 한판승부를 겨루었어요. 그러니 당시 대구 북성로는 대구뿐 아니라 조선 근대화의 발상지였어요.

 

: 영화 제작이라는 거대사업을 추진하려면 정치가들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 정치가들에 대한 기대는 별로 하지 않고 있어요. 대신에 의식이 깨어있는 대구 시민과 출향 인사들을 상대로 펀드모집을 적극 추진할 예정입니다. 최근에는 재래식 영화 말고 만화영화, 또는 신파조 영화에 변사 목소리를 넣은 색다른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도 속출하고 있어요. 미나까이 백화점 얘기에다 당대 대구의 광녀 금달래얘기를 끼워 넣으면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흥행 대박일겁니다.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미나까이 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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