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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 여학교부적응교사증후군 4인방의 인생행로

김두용 기자 | 기사입력 2021/04/12 [11:17]

[인물포커스] 여학교부적응교사증후군 4인방의 인생행로

김두용 기자 | 입력 : 2021/04/12 [11:17]

 

▲ [인물포커스] 여학교부적응교사증후군 4인방의 인생행로 / 좌측부터 자유대한민국희망연대 명예회장 이도수, 자문위원 서정숙, 상임자문위원장 김형기       © 더뉴스코리아


[더뉴스코리아=김두용 기자] 교육환경이 급격하게 바뀌는 데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교사들이 앞 다투어 조기 퇴직하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요즘
, 80대의 은퇴 교직자 이도수 교수가 50여 년 전에 직접 겪었던 여학교 부적응교사증후군의 사례를 회고담으로 소개한다.

 

: 교수님이 전국 최초의 TEE(영어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는 방법)시범수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서 전국적인 스타영어교사로 인정받게 된 얘기를 들은 바 있습니다. 그 공로로 대구시내 노른자학교로 영전 된 이래 부적응교사로 전락했다는 얘기가 사실입니까?

 

: , 남들에게는 쉽게 믿어지지 않는 일이지만 엄연한 사실입니다.

 

: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는지 심히 궁금합니다.

 

: 50여 년 전의 교육환경은 오늘날과는 너무 달랐기에 얼마나 달랐는지부터 얘기해야겠어요. 1970년대까지만 해도 대구가 경상북도에 속해있었기에 국공립학교 교사들을 전원 경북도 내 농촌학교로 발령 낸 후, 근무성적 우수자 순으로 대구시내에 전입시키는 인사원칙을 따랐어요. 당시 경북도 내 농촌지역 10년 정도 근무경력이면 대구시내학교에 전입조건이 되었어요.

 

그런데 나는 농촌지역근무 411개월 만에 대구시내에서도 최고노른자학교라는 대구여중으로 전입했으니 최고특혜를 받은 셈이었어요. 그런데 나에게는 그 학교가 생지옥처럼 느껴졌어요.

 

: 그 이유가 심히 궁금한데요?

 

: 전교생이 여자인데다, 교직원의 과반수가 여자라서 질식해죽을 것 같았어요.

 

▲ [인물포커스] 여학교부적응교사증후군 4인방의 인생행로 / 윤미향 퇴출 1인 시위하는 서정숙 화백    © 더뉴스코리아

 

: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꽃밭에서 산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유독 교수님만 왜 그렇게 느끼셨는지 모르겠네요.

 

: 남자선생님들 중에서도 여학교 특유의 잔재미를 느끼며 잘 적응하는 사람이 더러 있긴 했어요. 그러나 남자교사들은 대체로 여학교를 싫어하는 편이었어요. 특히 나처럼 여학교에 평생 근무해야 한다면 교직을 영영 떠나고 싶다는 남자교사가 몇 있었는데 나는 이들을 통틀어 여학교부적응증후군이라고 칭했어요.

 

: 그 분들의 공통적 특징이 어떠했는지 궁금하네요.

 

: 각자 해당교과에 최고엘리트교사라는 자부심이 특히 강한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었어요. 나보다 4년 선배인 최 모 수학선생님은 경북사대부고 출신으로 경북대 사대 수학과 수석입학해서 수석졸업 했으니 자타가 공인하는 도내 최고 엘리트 수학교사였어요. 그 분은 농촌학교 9년 근속 후에 대구여중으로 전입했어요. 또 다른 4년 선배인 국어선생님은 경북고등학교 출신으로 농촌학교 9년 근무 동안에 탁월한 연구 활동으로 국무총리표창, 대통령표창을 받은 국어과 최고 엘리트 교사로 인정받아 대구여중으로 전입했어요. 나를 포함한 국, , 수 세 중요 과목 최고 엘리트 교사가 대구여중 근무 1년 동안에 구제불능 부적응교사로 전락하고 말았어요.

 

: 왜 그렇게 되었지요?

 

: 그 학교에서는 전공교과에 대한 고차원적 지식이나 교육철학 따위는 쓸모없고 교감책상 뒷면 벽에 걸려있는 교사근무평가그라프가 우리 세 사람을 나날이 움츠려들게 했어요.

 

: 그 교사평가 그래프에서 평가하는 항목이 어떤 것이었는데요?

 

: 공납금 납부실적, 저축실적, 교실 환경 미화평가실적, 화장실 청소 평가실적 등등 어느 한 항목에서도 여교사들을 따라잡을 방도가 없었어요. 자포자기 상태에 빠진 우리 3인방이 퇴근길에 서로 위로하면서 그 창살 없는 감옥에서부터 탈출방안을 모의하면서 1년을 보냈어요. 그러다가 수학교사 최 선생님이 용케도 1년 만에 탈옥에 성공하여 경북고등학교로 훌쩍 떠났어요.

 

남은 두 사람이 허전해하던 차에 영어과 나의 동기생 조모 교사가 농촌학교 근무 8년 만에 대구여중으로 전입해왔어요. 그 친구는 무슨 신체적 결함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군 복무를 면제받은 덕으로 동기이면서도 나보다 교육경력이 3년이나 앞섰어요. 그 친구는 사대부고출신인데 일찍 시인으로 등단하여 시인특유의 낭만적 성격으로 대구여중 부임 시초부터 여학교부적응증후군의 전형적 특징을 보이더니 결국 학급관리평가 최하위에 영구 안착해 버리더군요. 내가 그 친구와 겨우 2개월 남짓 같이 근무하던 중 드디어 나에게도 창살 없는 감옥으로부터 탈출기회가 왔어요.

 

▲ [인물포커스] 여학교부적응교사증후군 4인방의 인생행로 / 자유대한민국희망연대 출범식에서 축사하는 이도수 명예회장    ©더뉴스코리아

 

: 어찌 그리 쉽게 절호의 찬스가 왔어요?

 

: 경북고등에 먼저 옮겨간 수학과 최 선배님이 경북고등에 영어교사 자리가 하나 비었다는 정보를 귀띔해주었어요. 나는 즉각 전출내신을 받기 위해 대구여중 교장 사택으로 찾아가 눈물호소 반, 공갈 반으로 두어 시간 실랑이 끝에 내신승인을 받아냈어요. 그때 여학교부적응증후군의 국어과 선배님이 동반하여 나의 눈물호소에 맞장구를 쳐주었어요.

 

: 눈물호소는 이해가 가는데 공갈 반이라는 말은 이해가 잘 안 되는데요?

 

: 내가 초년교사 시절에 전국을 떠들썩하게 할 만큼 열심히 교육활동을 한 결과로 28세에 디스크수술을 받아 아직 그 수술상처가 확연히 남아있다면서 보여 주겠다며 눈물을 글썽이며 상체 옷을 벗어던지자 교장이 알았으니 옷을 입으라고 하더군요.

 

: 그래서 경북고등으로 학기중간에 전출발령이 났군요?

 

: 그래요. 이임인사를 하는 날이 515일 스승의 날이라 대강당에서 스승의 날 행사 끝에 내가 이임인사를 할 때 나는 기쁨으로 하늘을 날 듯 한데 학생들이 비명을 지르며 울어대기에 나는 좋아 미치겠는데, 저 애들은 왜 저러지?”라고 속으로 중얼대며 대구여중 교문을 빠져나와 뒤도 안 돌아보고 경북고등으로 달려가며 콧노래를 흥얼대었어요.

 

: 그 후 대구여중에 남게 된 여학교부적응증후군 동료 두 분은 어떻게 되었어요?

 

: 국어과 이 모 선생님은 그로부터 2년 후에 농촌지역인 군위로 전출되었기에 군위가 한 때 내가 근무하며 정든 고향 같은 곳이라 부임인사를 하러 가던 날, 내가 동반해 지역민들에게 두루 인사시켜주었어요. 그 유능한 분이 대구전입 후 4년 연속 근무평가 하위를 받아 다시 농촌학교로 유배된 이후 소식이 영영 끊기고 말았어요. 친형제같이 지냈는데...

 

: 영어과 동기생 시인 친구 분은 어떻게 되었어요?

 

: 그 친구도 대구 시내 전입 4년 내내 근무성적 하위를 받아 경북의 농촌학교로 유배되었어요. 그 친구는 시인다운 낭만적 기질이 오히려 농촌학교에 더 잘 어울려 50대 말에 구미시 교육장으로 승진되기에 전화위복이라며 축하해 주었어요. 그러나 불행히도 구미시의 별스런 전교조 교사들에게 시달려 60세의 이른 나이에 심장마비로 돌연사하고 말았어요.

 

: 경북고등에 먼저 가신 수학과 선생님과 뒤따라가신 교수님은 그 후 어떻게 되었나요?

 

: 경북고등에서는 교감이 아닌 학생들이 교사 평가하는 편이었기에 우리 둘은 펄펄 날았지요. 최선배는 대구교육청 장학사를 거쳐 모교인 경북사대부고 교장으로 정년퇴임했어요.

 

: 교수님은 경북고등에서 대학으로 진출한 후에는 여학교부적응 증세가 치유되었어요?

 

: 천만에. 내가 25년 근무한 경상대 영어교육과 여학생들이 나에게 남학생 선호사상이 있다고 입을 삐죽거렸는걸요. 최근에는 사회활동을 하던 중, 50년 전 대구여중 졸업생 두 사람을 만났는데 60대 중반에 이른 그들이 카톡으로 여성특유의 정감을 표하는데, 나는 내가 전해준 저서에 대한 독후감만 기다리고 있으니 나는 여전히 화성남자, 그들은 금성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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