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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선 칼럼] 공자의 불혹(不惑), 맹자의 부동심(不動心)

김두용 기자 | 기사입력 2018/08/24 [09:55]

[정병선 칼럼] 공자의 불혹(不惑), 맹자의 부동심(不動心)

김두용 기자 | 입력 : 2018/08/24 [09:55]

정 병 선

 

 

▲ 정병선    ©더뉴스코리아

1.

맹자 공손추 상편 1장에서 관자(管子)와 안자(晏子)의 패도(覇道)정치로 이룬 제(齊)나라의 전성기를 그리워하는 제자 공손추를 타일러 하은주(夏殷周) 삼대성세(三代盛世)의 왕도(王道)정치를 복원하려는 맹자의 변설(辨說)은 정치(精緻)하면서도 장엄(莊嚴)했다.

 

성리학(性理學)의 핵심주제인 이기론(理氣論)의 기초개념을 상기하며 2장에서 맹자 심학(心學)의 단초(端初)인 不動心을 만났다. 맹자는 나이 40에 부동심의 경지에 들어섰다고 했다.. 부동심은 마음이 어떤 일이나 외부의 충격으로 인해 동요되는 일이 없는 상태를 뜻한다. 마흔에 불혹(不惑)했다는 공자와 같은 경지이다.

 

2.

맹자는 부동심으로 용기(勇氣)를 설명했다. 그것은 육체적인 용기가 아니라 마음의 용기이다. 맹자는 마음이 주인이고 육체적인 기(氣)는 그에 종속되는 것이라 했다. 심지(心志)가 굳으면 용기는 저절로 따라온다는 것이다.

 

▲ [정병선 칼럼] 공자의 불혹(不惑), 맹자의 부동심(不動心) / 사진=공자     © 더뉴스코리아


논어에서 공자는 “군자의 도(道) 세 가지 가운데 내가 가능한 것은 하나도 없다. 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고(仁者不憂), 지혜로운 사람은 미혹되지 않으며(知者不惑),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勇者不懼)”고 했다.

 

공자의 겸사(謙辭)이지만 군자의 덕목인 지인용(智 仁 勇)을 두루 갖추어 실천함이 그만큼 어려움을 토로한 것이리라!

 

또 “어진 사람은 반드시 용기가 있다(仁者必有勇)”고 하여 진정한 용기의 원천이 仁임을 밝혔다.

 

孔孟은 한 결 같이 진정한 용기는 흔들림 없는 마음의 떳떳함에서 나온다고 정의한다.

 

3.

어떻게 부동심, 즉 용기를 기를 수 있느냐고 공손추가 묻자 맹자는 공자가 증자에게 용기에 대해 가르치는 대목을 인용하여 대답한다.

 

“스스로를 생각해서 옳지 않다면 누더기를 걸친 비천한 사람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스스로 생각해 봐서 옳다면 천군만마가 쳐들어와도 나아가 용감하게 대적할 수 있는 것이다.(昔者曾子謂子襄曰: 子好勇乎? 吾嘗聞大勇於夫子矣: 自反而不縮, 雖褐寬博, 吾不惴焉; 自反而縮, 雖千萬人, 吾往矣.)”

 

또한 그 용기를 기르기 위해서는 氣를 잘 닦아야 하는데 맹자는 이를 호연지기(浩然之氣)라고 했다.

 

▲ [정병선 칼럼] 공자의 불혹(不惑), 맹자의 부동심(不動心) / 사진=맹자     © 더뉴스코리아


4.

넬슨 만델라는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이기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알았습니다. 지금 기억나는 것보다 더 여러 번 두려움을 느꼈지만, 담대함으로 두려움을 감췄습니다. 용감한 사람은 무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두려움을 정복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노벨평화상 수상소감에서 밝혔다. 부동심을 하나의 觀念에 그치지 않고 현실세계에서 실천한 사례이다.

 

5.

황망한 세월을 허둥지둥 쫓기듯이 살다보니 不惑도 知天命도 耳順도 이미 넘겨버렸다. 생각건대 공자의 불혹이나 맹자의 부동심은 이어지는 지천명과 이순의 경지를 예비하고 담보하는 필수적인 前提일 것이다. 그러나 그 경지에 이르기는 참으로 어렵다. 

 

거백옥(遽伯玉)은 “나이 50세가 되어서야 지난 49년간의 잘못한 것을 깨달았다(伯玉行年五十 而知四十九年非)”고 한탄하였고, 蘇東坡도 “육십년을 살아 왔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 살아 온 것 같다(百年六十化, 念念竟非是)”고 自責하였다. 莊子는 아예 한 걸음 더 나아가 “거백옥은 60년을 살면서 60번이나 바뀌었지만 한 번도 잘못이 없던 해가 없다(遽伯玉 行年六十而六十化)”고 했다. 

 

그러하니 40에 불혹이나 부동심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고 自歎하고 落望할 수만은 없다. 하늘이 허락한 시간이 다할 때까지 부동심을 갖추도록 힘쓰고 또 힘쓸 일이다. 인간의 보편적인 삶이란 시류(時流)에 흔들리기 마련이고 후회하는 시간의 연속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살아온 세월이 뿌리째 흔들리고 난세(亂世)라는 말로도 그 무참함과 좌절감을 다할 수 없는 악한 세상과 시절을 만나니 불혹과 부동심의 경지가 더욱 아득하다.

 

 

 

 

※외부 필자의 기고는 <더뉴스코리아>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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