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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 요은서당 손세현 훈장, 한 줌 들풀처럼 살아온 삶의 이야기

김두용 기자 | 기사입력 2021/07/29 [12:41]

[인물포커스] 요은서당 손세현 훈장, 한 줌 들풀처럼 살아온 삶의 이야기

김두용 기자 | 입력 : 2021/07/29 [12:41]

▲ [인물포커스] 요은서당 손세현 훈장, 한 줌 들풀처럼 살아온 삶의 이야기 / 사진=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 사건에 대한 규탄 궐기대회  © 더뉴스코리아


[더뉴스코리아=김두용 기자] 요은서당 손세현 훈장의 살아온 흔적을 들어봤다. 그는 감사하는 마음으로베푸는 마음으로실천하는 삶으로 살아가는 한 사람이다.

 

아래는 손세현 훈장이 한 줌의 들풀처럼 살아온 삶의 이야기이다.

 

넓은 세상에 한 줌의 들풀처럼 삶을 살아온 작은 발자국의 흔적을 되돌아봅니다.

 

그저 어려운 시절 고비마다 아내와 함께 인내로 마주하며 손잡고 살아온 평범한 이야기를 설익은 글로 적어봅니다. 언젠가는 한 줌의 흙이 될 인생이다. 욕심 부리지 말고 가벼운 마음으로, 봉사하는 자세로, 청소년들의 인성교육, 노인들의 어르신 교육을 재능기부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베푸는 맘으로, 실천하는 삶으로, 살아가자.

 

송아지 팔아(칠 만원) 살림나다.

 

사글세 방 한 칸 십 개월에 이만이 천 원 주고 살림집을 마련하였다. 사업가의 꿈을 안고 동분서주(東奔西走)하다 목재상에 취업했다. 근무시간이 하루 열네 시간쯤 되었다. 배는 등에 붙었다. 어릴 때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배고프면 물 한 바가지 마시래이

 

길섶 들풀처럼 수난의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오로지 근면 성실 신의 정직으로 강한 나를 만들었다. ‘오늘 오신 손님이 내일 나의 손님이 될 것이다라고 기대해 본다.

 

근면, 성실, 신뢰, 정직은 나의 밑천이다. 열심히 삶을 살은 보람으로 나도 작은 전()을 펴 사장이 되었다. 열 가지 철칙(鐵則)을 정해 놓고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사업을 하여 내 인생에 신의의 깃발을 높이 달 수 있었다. ‘장사는 이윤을 남기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라는 상도(商道)’에 나오는 말을 늘 가슴에 안고 삼십 여 년 사업을 하고 수분지족(守分知足)의 마음으로 마쳤다. 사업가의 푸른 꿈은 나의 생각대로 아름다운 동산을 만들었다.

 

 

있는 사람은 가진 것에 감사하고, 어려운 이웃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는 교훈을 부모님으로부터 받았다.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데에 소홀하지 않았던 부모님의 모습을 일찍 본받아 사회봉사활동과 이웃돕기 활동을 쉼 없이 실천하는 삶으로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청소년들을 위해 장학금 2,000만 원을 서구장학회에 기부하였다. 이어 나의 고향 밀양시에도 장학금 1,000만 원을 밀양시장학회에 기부하였다.

 

퍽치기 사건이 동네북 치듯 전국에서 심심찮게 일어났다. 우리 동네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 동네는 우리가 지키자며 청년 12명이 모여 자율방범대를 조직하였다. 여섯 개의 가로등을 설치(30% 자부담), 방범초소 짓고, 다마스 차량 1, 무전기 3, 방범 복, 방범 장비 등을 내 개인 사비로 지원했다.

 

▲ [인물포커스] 요은서당 손세현 훈장, 한 줌 들풀처럼 살아온 삶의 이야기 / 사진=다문화 가정에 전통혼례 거행 © 더뉴스코리아


19906월 초하루 자율방범대 개소식을 했다. 보조금 지원 없는 순수 봉사 단체였다. 우리 서구에 21개 동마다 방범대가 조직되어 600여명이 되었다. 서구자율방범연합회가 결성되어 초대회장에 추대되어 12(6)을 하였다. 자율방범대활동은 범죄예방과 청소년지도 활동에 큰 역할을 하였다. 전국적으로 자율방범대 조직이 확산되었다. 1992년도에는 정부에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었다. 그 해 난 영광스럽게 대통령상을 받았다.

 

야간 순찰활동을 통해 불량청소년들에게 부족한 사랑을 채워줄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하던 중 벌칙으로 사자소학을 한 페이지씩 방범초소에서 읽게 하였다. 글 읽는 소리에 오가는 행인들이 우리 아이도 같이 공부 좀 하게 해 달라고 하였다. 모이는 학생 수가 늘어났다. 이 활동이 나에게 평생 보람 있는 놀이터가 될 것임을 생각했다.

 

초가삼간 오두막집을 헐고 건평 30여 평을 현대식 건물로 교실을 지어 청소년사회 교육장으로 요은서당이라는 간판을 높이 걸었다. 구전(口傳)과 방송과 신문을 통해 홍보되어 7~80여명의 학생이 모였다. 콩나물시루 서당이다. 달동네 아이들이라 생활환경이 그렇다. 교재, 공책, 가방, 간식 등 모든 것은 다 무료로 제공했다.

 

매주 토요일에 3시간씩 공부하였다. 학동들은 고학년 몇 명이 직책을 갖고 스스로 질서를 유지한다. 학동들은 큰소리로 함께 천자문과 사자소학 읽는 것을 모두 다 좋아했다. 청소년들의 바른길 인도에 보람을 느끼며 난 신이 났다.

 

우리의 글자인 한자(韓字)를 한자방정식으로 재미나게 파자(破字)해 가르친 결과 5~6급 정도의 실력을 가지게 된다. 한자와 인성교육을 무료로 20년간 하였다. 노는 토()요일이 생기면서 학동이 팍 줄었다. 기로(岐路)에 서 있는 나에게 마침 학교에서 정규시간에 인성교육을 좀 해 달라고 부탁이 왔다. 듣던 중 반가운 이야기다. 새 학기부터 반별로 한 시간씩 강의를 하였다. 학생들이 너무 좋아했다. 소문에 이어 타 학교에서도 요청이 왔었다. 일주일에 2~3개 학교 강의를 지금까지 하고 있다.

 

요은서당에서 예절 및 한자 배우기를 원하는 주민에게 평생학습 기회제공과 부모교육을 통해 자아실현을 위한 지역사회교육장으로 펼치고 있다. 봉사단체들에게 소양교육도 앞장서 제공한다. 가르치는 것이 곧 배우는 것이다.

 

대한민국 신한국인(新韓國人) 99()에 선정(選定)되어 신한국인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자랑스러운 서구 구민상도 받았다.

 

동청소년지도협의회도 결성 서구회장, ()협의회 사무국장 6, 회장3년을 역임하여 반석위에 올려놓았다. 매년 오월이면 성년의 날을 맞아 전통 관례 계례행사를 거행하였다. 우리 서구는 집단 성년례를 매년6~70여 명을 모아 지금까지 거행하고 있다. 청소년유해환경감시단 활동으로 미래를 생각하는 청소년 보호활동 전개, 요은서당 인성예절교육으로 청소년사회교육운동을 전개하였다. 청소년들 바른길 인도에 지도위원들의 활동 덕분에 우리나라 사회발전에 이바지한 공으로 국민포장상을 받았다.

 

아이들에게 인성교육재능기부로 대구시 교육감상도 받았고, 범국민준법운동에 기여한 공으로 준법모범시민으로 선정되어 대구 경북 준법모범 시민상도 받았다.

 

붓과 씨름 끝에 영광스러운 서예부문 대상을 받았다. 범국민적인 통일의지에 기여한 공적으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14기 서구회장으로서 통일기반 조성 공적으로 대통령 공로장을 받았다. 대통령 표창 5번 받았다.

 

국가공인실천예절지도사로서 우리의 예()를 알리고 바르게 실천할 수 있도록 한국예절대학 교수 10년 근무, 노인대학, 주부대학, 학교 등 각처에 강의하고 있으며, 비영리법인 한국전통·현대예절연구원단체를 운영하면서, 생활보호대상자 가정과 다문화가정에게 우리의 전통혼례식을 무료로 올려주고, 성년자에게도 집단성년례를 무료로 계속 해마다 하고 있다. 

 

언젠가는 한 줌의 흙이 될 인생이다. 욕심 부리지 말고 가벼운 마음으로, 봉사하는 자세로, 청소년들의 인성교육, 노인들의 어르신 교육을 재능기부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베푸는 맘으로, 실천하는 삶으로,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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